27. (가)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? [1점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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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① 홍경래, 우군칙 등이 주도하였다.
- ② 청군이 파병되는 결과를 가져앉다.
- ③ 전개 과정에서 집강소가 설치되었다.
- ④ 왕이 도성을 떠나 공주로 피란하는 계기가 되었다.
- ⑤ 사건의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책사로 파견되었다.
조선 후기 / 1811년(순조 11년) / 홍경례의 난
💡 문제 해설
제시된 자료는 '가산순절록'과 가산 군수 '정시', '청천강 이북', '정주성' 등의 키워드를 통해 1811년(순조 11년)에 발생한 '홍경래의 난'임을 알 수 있다. 서북민에 대한 차별과 지배층의 수탈에 반발하여 일어난 이 봉기는 평안도 일대를 장악하였으나 정주성 전투에서 관군에게 진압되었다.
🔍 선택지 상세 분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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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정답 - 1811년(순조 11년)에 발생한 홍경래의 난은 몰락 양반인 홍경래와 우군칙 등이 중심이 되어 평안도 지역에서 일으킨 봉기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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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오답 - 청군이 파병되는 결과를 가져온 사건은 1882년의 임오군란 또는 1884년의 갑신정변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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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오답 - 집강소가 설치된 것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전개 과정에서 전라도 지역의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기 위해서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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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오답 - 왕이 도성을 떠나 공주로 피란한 계기가 된 사건은 1894년에 발생한 동학농민운동 제2차 봉기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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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오답 -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된 사건은 1862년에 일어난 진주 농민 봉기(임술농민봉기)이다.
📊 79회 시험 전체 합격률 통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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