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4. (가), (나)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? [2점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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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① 최우가 정방을 설치하였다.
- ② 쌍기가 과거제 도입을 건의하였다.
- ③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입하였다.
- ④ 만적이 개경에서 반란을 모의하였다.
- ⑤ 서희가 소손녕과 외교 담판올 벌였다.
고려 시대 / 이자겸의 난(1126년) ~ 무신정변(1170년)
💡 문제 해설
제시문 (가)는 1126년에 일어난 '이자겸과 척준경의 난' 시기의 상황이며, (나)는 1170년에 발생한 '무신정변'의 발단인 보현원 사건을 나타낸다. 따라서 (가)와 (나) 사이 시기는 1126년 이자겸의 난 이후부터 1170년 무신정변 이전까지의 기간이다. 이 시기에는 묘청의 난(1135년) 등이 발생하였으므로,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한 사건이 정답이 된다.
🔍 선택지 상세 분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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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오답 - 최우가 정방을 설치한 것은 1225년으로, 무신정변(1170년) 이후의 시기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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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오답 - 쌍기가 과거제 도입을 건의한 것은 광종 때인 958년으로, 제시된 시기보다 훨씬 이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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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정답 -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한 것은 1135년으로, 1126년(이자겸의 난)과 1170년(무신정변) 사이 시기에 해당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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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오답 - 만적이 개경에서 반란을 모의한 것은 최충헌 집권기인 1198년으로, 무신정변(1170년) 이후의 시기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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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오답 - 서희가 소손녀와 외교 담판을 벌인 것은 성종 때인 993년으로, 제시된 시기보다 훨씬 이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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